고려 거란 전쟁 총 정리 거란 1차 침입, 2차 침입, 3차 침입을 어떻게 이겨냈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고려 거란 전쟁

고려 거란 전쟁 총 정리 거란 1차 침입, 2차 침입, 3차 침입을 어떻게 이겨냈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가 KBS에서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 시대에 있었던 거란과의 전쟁을 그린 드라마로써, 당시 황제인 현종과 고려군 총 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입니다. 실제로 당시 거란과의 전쟁은 굉장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려 거란 전쟁의 이야기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

고려는 건국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와 친선관계를 유지했으나, 북방민족(여란, 거진)에 대해서는 대립정책을 취했습니다. 특히,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국가이기에 더 배척하였습니다.

942년(태조 25), 거란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친선관계를 요구했으나 태조는 이것을 거절하였고 나아가 훈요10조에도 거란을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송과 고려의 관계에 위협을 느낀 거란은 993년에 거란의 소손녕을 내세워 고려를 침입하게 됩니다.

거란은 총 3차에 걸쳐서 고려를 침입하는데, 그 때마다 슬기로운 고려의 사람들은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냈습니다.


거란 1차 침입

거란의 1차 침입은 993년 거란의 소손녕의 80만 군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서희’는 이에 반대하고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서희의 외교담판‘입니다.

이 담판의 결과, 소손녕은 군사를 이끌고 거란으로 돌아갔고, 서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동 6주를 얻어냈습니다.


거란 2차 침입

1차 침입은 서희의 활약으로 잘 마무리 되었으나, 2차 침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거란은 강동 6주를 내어준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다시 찾을 방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고려에서는 목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현종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 사건에 대해 거란이 책임을 물으면서 40만 대군을 이끌고 거란의 왕이 2차 칩입을 시작했습니다.

말을 이끌고 온 거란에게 산이 많은 고려는 불리한 지형이었습니다.

고려는 거란에게 불리한 곳을 찾아 공격을 피하거나 기습공격을 하였습니다.

특히, 양규 장군은 거란군은 가는 곳마다 무너뜨리는 큰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양규 장군의 활약으로 거란군은 퇴각했고, 고려는 강동 6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거란 3차 침입

거란은 다시 고려에게 무리한 요구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현종이 거란에 와서 예를 올릴 것’, 둘째, ‘강동 6주를 다시 내놓을 것’

하지만 고려는 요구를 듣지 않았고,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거란의 침략에 대항해 고려에서는 강감찬 장군이 총 지휘를 맡았습니다.

강감찬의 20만 대군은 흥화진에서 기습 공격에 성공하고, 개경으로 온 소배압의 군대의 보급을 끊어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 바로 ‘귀주’입니다.

날씨를 이용해 거란을 크게 격퇴한 전쟁, 바로 ‘귀주대첩‘을 통해 거란군은 수 천명만 거란으로 돌아갔고 이로써 거란은 고려를 침략하는 것을 포기했답니다.


고려 거란 전쟁은 크게 거란의 3차 침입으로 이루어졌고, 각각 서희, 양규, 강감찬의 활약으로 고려가 승리했습니다. 서희가 얻어낸 강동 6주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었고, 날씨나 지형을 고려한 전략의 힘이 빛을 발휘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드라마를 보면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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